오늘은 쉽니다.
뉴스레터 이름으로 맞는지 순간 고민했지만, 결국 이 제목이 됐습니다. 사실,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쓰는 저도, 이 뉴스레터를 읽는 여러분도 이 시간만큼은 쉬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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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라는 래퍼
어쩌다 보니 힙합을 좋아하게 됐다. '어쩌다' 수능 만점을 받았다는 말 같은 느낌의 겸손이 아니라, 순수한 사실이다. 그나저나 진짜 수능 만점을 받으신 분이라면 축하드립니다. 그건 진짜 대단한 일이니까요.
고등학생 때 스마트폰 대신 들고 다녔던 공기계에는 다이나믹 듀오의 전집이 들어있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순간의 취향이 아니라 평생을 함께 갈 습관 같은 게 됐던 게. 국힙과 외힙부터 시작해서 붐뱁, 트랩, 얼터너티브 힙합, 재즈랩, 싱잉랩 등등. 좋아하기는 하지만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그렇게 유튜브를 찾아봐도 붐뱁과 트랩의 차이가 뭔지 아직도 모른다. 그래서 드럼을 치는 게 붐뱁이라는거지?라는 답답한 소리만 하고 있다. 무지한 사랑만큼 오래가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힙합을 좋아할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가장 좋아하는 외힙 아티스트는 켄드릭 라마. 켄드릭 라마는 이런 아티스트다. 아무 생각 없이 비트에 몸을 맡기고 있다가, 가사를 보고 그 의미를 아는 순간 '헉'하게 되는 아티스트. 최근 발매된 5번째 앨범 <Mr. Morale & The Big Steppers>에서는 이 노래가 제일 좋았다. 'Purple Hearts'.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고스트 킬라의 울부짖는 래핑은 소름이 돋는다. 그 가사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문득 노래 제목이 궁금해졌다. 켄드릭 라마라면 단순히 <보라색 심장>이 아닌 뭔가 심오한 뜻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구글링을 해봤다. 연관 검색어: purple heart meaning bts. 켄드릭 라마를 찾다가 BTS의 위엄만 다시 느끼고 갔다.
그래서 왜 그 노래가 제일 좋냐고 물어본다면 음악이 좋다는 말밖에 딱히 할 말이 없다. 그 영화가 좋은 이유는 설명할 수 있는데, 왜 노래가 좋은 이유는 설명하기 어려운지 모르겠다. 비트가 좋다, 아니면 가사가 좋다. 이 초라한 두 개의 선택지에서 항상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일단 'Purple Hearts'가 좋은 이유는 비트다. 사실 이번 앨범은 내 기준에서 조금 어려운 앨범이었다. 지난 앨범 <DAMN.>처럼 귀에 팍팍 꽂히는 부분을 찾기가 힘들다. 이쯤이면 이렇게 진행되겠지?라는 얄팍한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켄드릭은 아니? 그거 아닌데?라며 자꾸 딴지를 건다.
엄청 실험적인 (이것 역시 내 기준) 트랙도 있다. 'We Cry Together'라는 곡인데, 이 노래 덕분에 평생 들을 욕은 다 들은 것 같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가사의 절반 이상이 'fxxk'이다. 남녀가 죽일듯이 싸우다가 결국 탭댄스로 화해하는 스토리가 아주 인상적인 곡이다. 물론 탭댄스가 인상적인 건 아니었고, 스킷처럼 끝날 수 있는 설정을 아예 하나의 트랙으로 만든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도 듣고 있다. 마치 오디오 드라마를 듣는 것처럼 정말 버라이어티한 트랙이다. 꼭 이어폰을 끼고 듣길 바란다.
'Die hard'라는 트랙도 좋았다. 적당히 여유 있는 비트도, 나는 다이하드라면서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는 반전 있는 가사도 좋다. 지난 앨범의 'Love.' 라는 트랙이 생각났다. 이럴 때 보면 참 로맨틱하기도 하고, 이래서 내가 좋아하지.
오랜만에 플레이리스트를 업데이트했다. 새로 산 옷들을 옷장에 걸 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여기서도 통한다. 내일은 어떤 노래를 들으면서 출근할지 생각하면 조금이나마 기대가 된다. 지하철을 타기 전, 타는 중, 타고난 후의 음악을 모두 정해둔다. 타기 전에는 그래도 신나야 하니까 'HUMBLE.'이 좋을 것 같고, 타는 중에 들을 노래로는 이미 'Purple Hearts'를 정했다. 내리고 나서는..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 봐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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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맥일 수밖에 없어.
가난한 자취생에게 배달 앱은 구원이다. 개인적으론 배달의 민X 보다는 요X요 어플을 더 애용하는 편이다. 몇 달 전만 해도 배달의 민X에 이력서까지 넣고, 배달의 민X 돈으로 전시회까지 갔다 왔던 사람이 할 말은 아니지만. 변명을 하자면 요X요가 더 혜택이 많은 느낌이다. 느낌이 아니고 실제로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넷플릭스를 들어가면 정작 제일 오래 보는 게 메인 화면인 것처럼, 배달앱을 쓸 때도 똑같다. 어차피 그래봤자 보던 거 보고, 먹던 거 먹을 거면서 오늘은 어떤 맛있는 음식을 먹을 것인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다. 그렇게 고민하다 결국 오늘도 똑같은 메뉴를 골랐다. 맥도날드 햄버거. 단품은 시켜본 적이 없다. 당연히 세트에, 배달비까지 맞춰서 감자튀김 하나 정도는 더 시켜줘야 자취생의 식탁이 완성된다.
소신 발언을 하자면, 햄버거는 먹기 직전이 가장 맛있다. 먹기 전의 기대감으로 뒤섞인 허기짐만 있다면 그 어떤 음식이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주문하기 버튼을 누르기 전까지만 해도 왕성하던 식욕은 참 재밌게도 햄버거 한 입에 터덜터덜 무너진다.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게 아니라, 때우는 느낌이다. 아무리 AI가 요리부터 배달까지 다 해주는 4차 산업혁명 시대라도, 음식만큼은 원시적인 레시피로 만드는 게 제일 맛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시골 된장 같은 거, 나이를 먹을수록 이런 게 그리워진다.
하지만 8평짜리 원룸에 된장을 띄울 수 있는 베란다가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오늘 저녁도 또 햄버거다. 내 최애 메뉴는 빅맥이다. 치킨 패티에서 소고기 패티의 매력으로 갈아탄지 좀 됐다. 치킨 패티 중에서는 맘스터치의 싸이버거, 아니면 맥도날드의 맥스파이시. 이런 식으로 '햄버거' 알고리즘이 정해져 있다. 소고기 패티는 당연히 빅맥이다. 턱이 빠질 정도로 최대한 입을 벌리고 번과 뒤섞이는 소고기 패티의 맛을 한바탕 느껴본다. 음! 버거를 먹는데 교양은 사치다. 토핑이 새서 입가에 묻고, 소스로 손이 뒤범벅되는 건 누구에게나 공평한 일. 부자도, 가난한 나도 이 순간만큼은 입가에 소스를 듬뿍 묻힌 채로 양껏 버거를 씹는다.
셰프의 소울이나 장인 정신은 잘 모르겠지만, 이 버거에도 아르바이트생들의 정성이 담겨 있다고 확신한다. 사실 우리가 먹는 음식들의 모든 원천은 자연이다. 다만 그것을 어떻게 가공하느냐에 따라 셰프의 오성급 요리가 될 수도, 패스트푸드점의 수많은 햄버거 중 하나가 될 수도 있다. 자연은 제공하고, 인간은 만든다. 언뜻 보기엔 참 공평한 과정이다.
둘 중 어느 선택지가 낫냐고 말할 수는 없다. 요리는 취향이며, 취향은 상대적이다. 누군가는 비싼 돈을 내면서 수제버거를 찾아야 만족하겠지만 패스트푸드의 공평한 공정 과정을 거친 똑같은 맛의 햄버거를 원하는 사람들도 있다. 바로 나처럼! 서울에서 먹었던 그 햄버거의 맛을 먼 부산에서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 소울푸드의 조건 중 하나 정도는 달성한 셈이다.
그래서 오늘도 햄버거를 먹는다. 모두들 각자의 이유로 식탁이나, 침대 위, 혹은 바닥에 앉아 끼니를 해결한다. 각자의 취향이 담긴 그릇, 종이 박스, 플라스틱 상자를 비워두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아! 집밥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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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예능 좋아하세요?
요즘들어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줄여서 <꼬꼬무>. 드라마도 아닌 준교양 프로그램을 이렇게까지 챙겨보게 될 줄은 몰랐다. 밥 먹을 때도, 출퇴근하는 지하철에서도, 자기 전에도 본다. 예능을 보며 마냥 생각 없이 깔깔대기엔 조금 죄책감이 들고, 그렇다고 교양 프로그램을 보기엔 정말로 인생의 낙이 영영 사라질 것 같아서 찾은 나름의 차선책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건 재밌다는 사실이다. 친구들이 썰을 풀어주는 것처럼 철저히 반말로 진행되는 설정. 썰을 푸는 사람도 풀 맛이 나는 게스트들의 찰진 리액션이 일품이다. 너무 과몰입해서 봤는지, 가끔 <꼬꼬무>에 게스트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리액션을 해야할지 걱정이 된다. 남들 다 알고있는 역사적인 인물인데 나만 몰라서 멀뚱멀뚱 보고 있는 게 화면에 잡히지는 않을지, 그 모습을 본 방송국은 '옳다구나' 하면서 클로즈업 한 내 얼굴에 큼지막한 물음표를 띄어놓지 않을까 걱정된다. 다행인 점은 아직까지는 섭외 메일이 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당분간은 마음 편하게 시청자의 입장이 되어 즐기기만 하면 된다.
제일 인상 깊었던 편을 꼽자면 '정치깡패 이정재'편이다. 정말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다. 우선 직업이 깡패인데, 이정재는 싸움을 못했다. 공부 못하는 학생, 허슬 안 하는 래퍼들은 많이 봤어도, 싸움 못하는 깡패는 또 처음이다. 그 대신 이정재는 머리가 좋았다. 전투력을 잃고 지력을 얻은 셈이다. 나름대로 판을 짜고, 판을 벌리는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정재의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찾아보시길.
최근에 빠진 또 다른 예능은 <유퀴즈>다. 퀴즈를 맞히면 근처 ATM에서 바로 100만원을 뽑아준다는 초기 설정 대신, 이제 완전히 토크쇼로 자리 잡은 모양이지만 그래도 퀴즈는 여전하다. 유퀴즈가 좋은 점은 각자의 일상에도 특별함이 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것이다. 유퀴즈에는 유명 연예인만 나오지 않는다. 박사님이 나올 때도 있고, 웹툰 작가나 평범한 여고생이 나올 때도 있다. 그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전혀 다른 우주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우주가 얼마나 넓은지, 가끔씩 너무 쉽게 잊어버리곤 한다.
그나저나 요즘 참 볼거리들이 많다. 구독하고 있는 OTT 서비스만 벌써 6개다. 이렇게 볼 게 많은데, 죽기 전까지도 다 볼 수 없는 예능이나 드라마가 있다는 건 좀 슬프다. 평생 존재조차 모르다 사라질 명작들이 있진 않을지 걱정된다. 부지런히 살아야 한다. 같은 크리에이터의 입장에서, 만든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한 번쯤은 슬쩍이라도 봐주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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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해지고 싶다는 망상
"늘 하고 싶은 말은 준비되어 있었어요. 문제는 그걸 어떻게 전달할지였죠."
무슨 셀럽의 인터뷰 내용 같지만 사실 내가 방금 지어낸 글이다. 쓰는데 3초도 안 걸렸지만 그래도 제법 근사한 대답 같다. 이제 막 첫 정규앨범 발행을 앞둔 언더그라운드 래퍼의 인터뷰 같기도 하고, 입봉을 앞둔 천재 영화감독의 소감문 같기도 하다. 아니었다면, 뭐 어쩔 수 없지만.
유명해지는 망상을 아주 가끔, 아니 자주 하곤 한다. 어떤 날은 소박하게 <유퀴즈>에 나가서 인터뷰하는 정도에서 마무리되는 반면, 좀 과하다 싶은 날은 책까지 내고 인세로 건물을 사며, 그 건물로 스타벅스에 세를 줘서 임대료로 먹고살다가 심심해져서 글을 쓰고 사는 유명인사가 되는 망상을 해본다. 망상치고는 꽤나 디테일하다. 원래 망상은 현실보다 더 계획하기 쉽다.
그다음엔 무엇을 할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 정도로 과하게 심심한 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유명하다는 것 너머에 무슨 또 다른 목표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유명해졌으면 됐지, 뭘 또 그래? 이런 느낌이다. 어떻게 유명해질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그 시작은 이 뉴스레터가 되지 않을까라는 나름대로의 야심을 품고있다.
인스타그램 덕분에 유명해지는 건 예전보다 아주 조금 더 쉬워졌다. 대신 직업 앞에 인스타-라는 말이 붙으면 어감은 썩 좋지 않다. 인스타 래퍼, 인스타 셀럽, 인스타 작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사이버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삶은 되고 싶지 않다. 그래도 어디에서라도 유명해지는 건 대단한 일인 것 같다. 유명해지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망상은,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라는 망상으로 옮겨갔다. 그래서 진짜, 몇이나 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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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잘 쉬다 가셨나요? 쉬려고 했다가 괜히 기운만 빠지셨다거나, 너무 잘 쉬어서 깜빡 잠이 드셨다면 여기에 적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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