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쉽니다.
뉴스레터 이름으로 맞는지 순간 고민했지만, 결국 이 제목이 됐습니다. 사실,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쓰는 저도, 이 뉴스레터를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 시간만큼은 쉬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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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과 안드로이드
안드로이드에서 아이폰으로 갈아탄지 벌써 한 해가 넘어가지만, 아직도 아이폰은 가끔씩 낯설다. 요즘 그렇게 사람들이 열광하는 MBTI에 비유하자면 안드로이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INFP, 아이폰은 사람은 좋지만 나를 매달리게 만드는 ENTP 같은 느낌이다.
안드로이드는 '이것도 준비했고, 이것도 준비해 봤어!'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든 써먹게 만들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진다. 때로는 그 친절이 조금은 부담스러워서 문제다. 이런 과한 친절의 대표적인 예는 바로 내가 안드로이드를 떠난 대표적인 이유이기도 한, 메뉴 하단의 네비게이션 버튼이다. 분명 편리한 기능이긴 하지만, 치마를 입은 날 친하지도 않은데 억지로 재킷을 벗어 덮어주는 선배 같은 느낌이다. 착하긴 한데, 가끔씩은 좀 부담스럽다고 해야 하나. 무엇보다 이 하단바 하나 때문에 화면이 전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전체적인 스마트폰의 외관은 나쁘지 않은데, 이 하단바만 있으면 왠지 모르게 투박해 보인다.
반면 아이폰은 어딘가 노련하다. 조금이나마 불편함을 토로하려 들면 '잘 생각해 봐, 너 진짜 이런 기능 필요해?'라며 은근히 설득을 하려 든다. 그런 설득을 어떻게든 반박하려고 들고 나섰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그냥 자연스럽게 설득이 된 것 같다. 전화 끊기 버튼이 없는 화면이나, 다시 시작하기 버튼이 없는 화면을 볼 때면 '그래, 뭐 생각해 보니 그렇게 필요하진 않은 것 같기도 하고...'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게 된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안드로이드냐, 내가 상대방에게 맞춰 가야 하는 아이폰이냐. 몇 년 동안 계속됐던 이 고민은 결국 아이폰의 승리로 끝났다.
지금 쓰고 있는 기종은 아이폰 SE 2세대.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사이즈가 매력 포인트인 기종이다.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화면은 정말 작다. 처음에는 이걸로 어떻게 유튜브를 보나 고민했을 정도로 정말 작아 보였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아이폰에게 이미 설득 당한 나는 그 작은 화면마저도 일종의 감성처럼 느껴졌다. 어차피 아이폰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대부분 익숙해지면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문제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잖아?
뭐니 뭐니 해도 애플의 생태계는 '스며드는 맛'이다. 처음에는 아이폰으로 시작했던 것이, 에어팟으로 이어지고, 이제는 맥북과 아이패드도 넘보고 있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것이 나에게 '있는 것'이 되는 순간 그 가치는 확연히 달라진다. 전자기기에 관심을 끊고 살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일단 눈을 들이기 시작하면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이 돼야 마음이 후련하다. 한도 끝도 없이 무한해 보이는 안드로이드의 세계와는 달리, 그래도 애플의 세계는 어느 정도 끝이 보인다. 듣는 것은 에어팟, 스마트폰은 아이폰, 태블릿은 아이패드. 이렇게 체계적으로 정리된 카테고리만 봐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애플의 성격이 바로 느껴진다.
최근에는 에어팟 맥스가 계속 눈에 밟힌다. 헤드폰을 쓰고 다닌 건 고등학교 때가 유일한데, 한창 남들 눈에 띄는 걸 싫어할 나이에 나는 하얀색 소니 헤드폰을 쓰고 다녔다. 학교 가는 길에서도, 학교 안에서도.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무슨 깡이었나 싶다. 그래도 어느정도 세상과 소통할 틈은 남겨놓는 느낌의 이어폰과는 달리, 헤드폰은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 그래서 이어폰을 살 때와는 달리 좀 더 생각이 깊어진다. 주변의 시선도 조금은 고려해야 하고, 아, 물론 비싸진 가격도 한몫한다.
이런 내 애플 사랑과는 별개로, 주식 창은 한 달째 새파랗게 질려있다. 아직도 가끔씩 시리와 말이 통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 복잡한 주식의 세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가격이 오르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고, 가격이 내리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는다. 깔끔하고 직관적인 애플의 세계처럼 주식의 세계도 간단하면 좋으련만. 덕분에 묵어뒀던 애플 주식을 좀 팔아서 에어팟 맥스나, 아이패드를 장만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은 보류 중이다. 애플이 부러워졌다. 이래나 저래나 늘 웃을 수 있는 최후의 승자는 애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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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말고 아무거나 주세요
우리나라는 커피 소비량으로 세계 6등인 나라다. 커피 콩이 자라지 않는 나라(라고 쓰려다 커피 콩 재배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보고 급하게 내용을 수정했다. 참 세상 많이 좋아졌어.) 커피콩이 자라기도 힘든 이 땅에서 6등이라니. 하긴, 생각해 보면 한 골목에 프랜차이즈 카페만 서너 군데인 이 나라에서 커피를 안 마시고 버티기는 불가능하다. 밥-영화-카페로 고정된 데이트 루틴만 보더라도, 이 나라에서 커피가 차지한 지위는 거의 주식이나 다름없다.
개인적으로 커피를 즐기지는 않지만, 카페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이 무슨 클럽에 음악 들으러 가는 얘기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이다. 적당히 소란스러운 소음, 적당히 어두운 조명, 맛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대로 먹을 만한 커피만 있으면 세상 부러울 것 없이 참 여유롭다. 그래서 주말의 한적한 동네 카페들을 찾아 나선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카페는 집 근처의 베이커리 카페인데, 핑크빛 외관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왔다.
중국집의 기본은 짜장면인 것처럼, 카페의 기본은 아메리카노다. 아무리 비싸봐야 대개 6천 원을 넘지 않는 착한 가격도 마음에 들고, 일단 전직 카페 알바의 입장에서 아메리카노는 만들기가 참 쉽다. 그러니까 아메리카노 많이들 사주세요.
알고 있는 분들도 있겠지만, 아메리카노의 세계는 두 파로 양분된 암흑가와 비슷하다. 그 이름도 무시무시하다. 아아파와 뜨아파. 중국집의 찍먹파와 부먹파에 이어 치열하게 세력 다툼을 벌이고 있는 이 암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더위의 이번 여름이 오면서 아아파의 승리로 끝난 것 같다. 진짜 말이 나와서 말인데, 도저히 아아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계절이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의 나에게 아메리카노는 어른들의 상징이기도 했다. 가끔씩 부모님들 모임에 동석하게 되면, 어른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아메리카노를 시키곤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아메리카노는 집에 있는 맥심 봉지를 몰래 뜯어가며 만든 커피의 맛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진짜 어른들만을 위한 음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메리카노는 가격을 생각한 어른들의 배려이자, 제일 무난한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렇게 기대했던 아메리카노와의 첫 만남은 당혹스러움이었다. 언뜻 보면 콜라같이 생긴 맛있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순도 100%의 쓴맛. 그래도 나름 아메리카노의 미묘한 고소한 맛과 쌉싸름한 맛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그때의 아메리카노는 배신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어른들만 이런 걸 마시는구나. 그렇게 맛없는 생강 즙을 꿀떡꿀떡 잘 마시던 아버지를 보며, 어른이 되면 상대적으로 쓴맛에 둔감해지나라는 의문까지 들었다.
이렇게 나처럼 아메리카노에게 배신당한 사회 초년생들을 위해 '아샷추'라는 메뉴가 등장했다. 아메리카노와 마찬가지로, 아샷추와의 첫 만남도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카페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의 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한 남자 손님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이스티에 샷을 추가해 달라고 하셨고, 나는 이것이 신종 진상인지 아니면 나를 테스트하는 것인지 혼란에 빠진 채로 손님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 어떤 악의도 없는 순순한 얼굴이었다. 뒤이어 사장님은 이것이 아샷추라는 메뉴라는 것을 알려주셨고, 그제서야 의문은 풀렸다.
커피에 물을 타 먹는 아메리카노에도 기겁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조차도, 야삿추를 맛보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 한창 대세였던 단짠단짠에 이어, 아메리카노의 씁쓸한 맛과 아이스티의 달콤한 맛이 만들어내는 쓴단쓴단의 맛에 흠뻑 빠진 요즘 나의 카페 1픽은 스타벅스가 아닌 빽다방이다. 여러 종류의 아샷추를 맛보았지만, 빽다방의 비율은 따라올 자가 없다. 한 모금을 마시면 이건 좀 과하게 달지 않나? 싶을 정도의 당도가 느껴진다. 기대보다 후회가 밀려올쯤, 샷의 씁쓸한 맛이 어디선가 은은하게 퍼져온다. 그러면 안심이 된다. 이런 메뉴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내는지 국가적인 차원에서 상이라도 줘야하지 않나 싶다.
오늘도 점심을 먹고 역시 아샷추를 선택했다. 마지막 감상평을 남기자면 아샷추는 인생의 맛이다. 달콤한 맛이 몰려오면, 꼭 끝에는 쓴맛의 여운이 탁 치고 나간다. 좋은 일에는 꼭 나쁜 일이 생기는 인생의 절대적인 법칙과도 같다. 뭐 어쩔 수 있나, 꾹 참고 또 한 모금을 마셔보는 수밖에. 빽다방의 미스터리한 아샷추의 비율만큼, 우리 인생의 비율도 참 알 수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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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면
나에게 서점은 유아기의 고향이다. 비유가 좀 과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정말이다. 때가 되면 고향으로 회귀하는 연어 떼처럼, 이쯤 되면 서점 한번 가야 하는데? 이런 식이다. 지금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고속터미널 역 지하에는 <영풍문고>라는 대형서점이 있었다. 그 큰 서점 옆에는 2층짜리 맥도날드도 있었다.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대형 분수도 있었다. 서점과 맥도날드. 8살짜리 초등학생한테는 당연히 맥도날드의 압승이다. 책보다는 빅맥의 맛에 이끌려 첫 발을 내딛긴 했지만, 그래도 서점에 가는 길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토요일에는 맥도날드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서점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우리의 주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서점에는 유독 추억이 많다. 서점에서 울고불고 한 적도 있다. 물론 책 때문에 흘린 눈물은 아니고, 엄마를 잃어버려서 흘린 처절한 눈물이었다. 아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대형 서점은 어린아이에게 미로나 다름없는 곳이다. 책으로 둘러싼 비슷비슷한 구조에다가,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면 인파에 휩쓸리는 곳. 결국 그날 영풍문고의 스피커에서는 내 이름과 동생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안내 방송이 서점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서점과 조금 거리를 뒀던 것 같기도 하고.
꼭 서점이 아니어도 좋다. 책이 가득 쌓여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환영이다. 영풍문고를 이은 다음 추억의 장소는 인천에 있는 미추홀 도서관이다. 다른 도서관은 가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도서관치고는 꽤 큰 규모의 도서관이었다.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 따로 있을 정도였으니. 그 많은 책을 다 읽을 것도 아니면서, 왜 그렇게 도서관에 가는 길은 마음이 들떴는지 모르겠다. 서점이나 도서관같이 책이 많은 곳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 같은 분위기가 있다. 영화 <투모로우>에서 살인적인 추위를 피해 도망친 주인공 일행이 도서관의 책을 불태워 생존하는 것만 봐도, 도서관은 여러모로 쓸 데가 많은 공간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예나 지금이나 어린아이에게 서점은 정말 지루한 곳이다. 조금이나마 재밌어 보이는 책을 찾아내면 어김없이 흰색 비닐에 꽁꽁 포장되어 있거나, 그것도 모자라 테이프까지 칭칭 감겨있다. 그나마 볼 수 있는 '견본' 딱지가 붙어있는 책은 이미 헤질대로 헤져서 읽어 볼 수가 없는 지경이다. 서점에서 어린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이 좋아하는 책들을 잔뜩 모아놓은 코너밖에 없다. 청소년 추천도서 코너거나 아니면, 고전들을 모아놓은 코너거나. 볼 책이 없다는 아이들의 말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고, 아이들이 만화책만 읽는다는 어른들의 항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사실 요즘의 서점은 책만 읽으러 가는 공간보다는, 복합 문화 멀티플렉스 같은 공간이 됐다. 귀여운 문구류를 파는 코너가 따로 있고, 한 쪽에서는 전자기기들이 진열되어 있기도 하고, 또 다른 한 쪽에서는 구입한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카페까지 마련되어 있다. 어떻게든 서점에서 최대한 오랜 시간을 보내게 하려는 사장님의 치열함이 느껴진다. 이러나저러나, 서점이 놀이공간이 되어간다는 점은 분명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긍정적인 변화인 것 같다. 책을 보는 게 단순히 교육의 목적이 아니어야 한다. 빅맥에 속아 서점의 길을 택한 나처럼, 서점을 찾는 이유가 굳이 책이 아니더라도 좋다.
자리에 앉아 한 권을 정독하지 않아도, 표지를 슬쩍 슬쩍 보고 문장 몇 개를 훔쳐 읽는 것만으로도 분명히 의미 있는 독서의 일부가 된다. 텍스트와 친해져야 한다는 강박 대신, 눈도장을 찍으며 자연스럽게 다가가면 어느 순간부터 독서라는 것에 조금은 흥미가 생긴다. 그래야 나 같이 글을 쓰는 사람들도 설자리가 생기고. 하여튼 책에 그렇게 부담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의 모든 유익한 정보가 텍스트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영상이나 이미지를 통해서도 충분히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단지 세상을 알아갈 수 있는 방법이 하나 더 추가됐을 뿐이다. 평생을 네이버 검색에 기댈 것이 아니라면, 가끔씩은 책으로 세상을 보는 것도 썩 지루하지는 않다.
어쩐지 잔소리로 마무리 된것 같지만, 하여튼 책도 많이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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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땐 빨래를 해
아마 모든 자취생들이 그렇듯, 주말은 밀린 집안일을 하는 대대적인 날이다.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 느꼈던 낙 중 하나는 바로 섬유 유연제였다. 군대에서부터 시작된 이 섬유 유연제와의 인연은 참 질기다. 평소 같으면 신경도 안 썼을 종이 섬유 유연제 몇 장 하나에 우리들은 참 행복해했다. 빨래에서 좋은 향이 나는 게 이렇게 행복한 거구나.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게 참 감사한 일이구나. 그때 느낀 사소한 인생의 진리는 지금도 여전하다. 어디서 이런 향이 좋다는 소식만 들으면 일단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은 다우니의 실내 건조용 섬유 유연제다. 파란색의 플라스틱 병에, 달달한 자스민 향이라고 적혀있지만 진짜 자스민의 향은 어떤지 잘 모른다. 현대 사회의 병폐다. 방 한구석에서도 한 번도 보지 않은 것을 마치 본 것처럼 알 수 있지만 그게 맞는 정답인지 모른다. 어렸을 때는 바나나 우유의 바나나맛이 진짜 바나나라고 믿었던 것처럼, 인공적인 향이 점점 자연의 향을 대체하고 있다. 그래도 뭐, 향은 좋으니 일단은 넘어가기로 한다.
빨래의 가장 중요한 미덕은 중용이다. 아무리 더러운 빨래라도, 세제를 더 넣는다고 더 깨끗해지진 않는다. 섬유 유연제도 마찬가지다. 좋은 향이라고 왕창 부어버리면, 옷장이 며칠 내내 섬유 유연제 냄새로 진동을 한다. 뭐든지 적정량이 필요하다. 계량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눈대중으로 세제를 붓다가, 거품이 도저히 빠지지 않아 하루 종일 세탁기만 돌리며 얻은 귀중한 교훈이다. 가끔은 이론으로 배운 교훈보다, 경험으로 얻은 교훈이 더 뼈아프다.
세탁만큼 중요한 과정이 건조다. 그 핵심은 건조기다. 건조기를 처음 알게 된 것도 군대에서인데, 이쯤 되면 군대에 뭐가 진짜 있긴 한가보다. 건조기에 돌린 빨래는 자연 건조로 마른 빨래와는 느낌이 다르다. 훨씬 더 보송하고, 건조기의 열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림질을 한 듯 빳빳함을 유지한다. 요즘 세탁기는 건조 기능도 있다길래 기대를 품었지만, 우리 집 세탁기는 클래식이다. 건조 기능이 있을 리가 없다. 대신 건조대는 있다. 집주인 분의 배려로 공짜로 얻은 건조대인데, 받치는 부분이 부러져 있다. 일단은 쓰는 데 별지장이 없어서 다행이다.
빨래를 탁탁 털고 건조대에 널다 보면 덩달아 나도 깨끗해진 느낌이다. 섬유 유연제 냄새가 얼마나 나는지에 따라 그날의 세탁 상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섬유 유연제를 적당히 넣은 날은 코를 빨래에 푹 박아야 은은한 향기가 느껴진다. 반대로 과하게 넣은 날에는 빨래를 널 때부터 섬유 유연제 냄새가 좁은 방 안을 진동한다. 무슨 요일에 빨래를 하느냐에 따라 기분도 달라진다. 토요일의 빨래는 여유롭다. 어차피 내일도 쉬는 날이니까, 일주일을 마무리하는 기분으로 빨래를 넌다.
반대로 일요일의 빨래는 조급함이다. 당장 이 빨래가 마르지 않으면 어제 썼던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야 하고, 덜 마른 축축한 옷을 입고 출근을 할 수도 있다. 토요일의 빨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즐길 수 있다면 일요일의 빨래는 과정은 필요 없다. 어떻게든 마른 빨래라는 결과값을 내놓아야만 한다. 그렇게 빨래를 하다 보면 어느새 주말이 다 끝나간다. 다음 주에는 좀 더 여유롭게 빨래를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어림없지, 같은 상황의 반복이다.
오늘의 레터는 좋아하는 뮤지컬 <빨래>의 넘버의 가사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빨래라는 뮤지컬을 알게 된 건 <놀면 뭐하니?>의 방구석 콘서트에서였다. 빨래라는 집안일 하나를 가지고 뮤지컬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생각보다 엄청 깊이 있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에 두 번 놀랐다. 빨래 하나에 인생이 담겨있다. 빨래는 인생이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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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잘 쉬다 가셨나요? 쉬려고 했다가 괜히 기운만 빠지셨다면 여기에 적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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