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쉽니다.
뉴스레터 이름으로 맞는지 순간 고민했지만, 결국 이 제목이 됐습니다. 사실,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쓰는 저도, 이 뉴스레터를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 시간만큼은 쉬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
|
|
멋지게 인사하는 법
오랜만입니다. 이 뉴스레터를 통해 직접 인사드리는 건 처음이죠? 읽으시는 분도 어색하겠지만, 쓰는 저도 상당히 어색합니다. 어디 간다는 말도 없이, 계획에도 없이 잠수 이별을 당해본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체험하게 되셨으니 말이죠. 죄송합니다. 달력을 보니 지난 레터를 보낸 게 두 달 전이었으니, 계절도 여름에서 겨울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먼저 그동안 레터를 보내드리지 못했던 사정을 설명하자면 게으름이 3할, 소재의 고갈이 5할, 개인적인 사정이 2할 정도 됩니다.
위에도 적혀있듯이, <오늘은 쉽니다>는 저의 '일상적인'이라고 쓰고 '아무도 관심없는 저만의 소소한' 이야기라고 읽는 뉴스레터입니다. 아무도 모르는 남의 이야기를 슬쩍 가져와 제 이야기라고 바락바락 우길 수도 있겠지만, 거짓말만 했다 하면 실실 웃음부터 나오는 이 버릇 덕분에 <오늘은 쉽니다.>는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저의 이야기입니다. 문제는 소재의 유일한 출처인 저라는 사람이 그다지 외향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인물이라는 사실입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유쾌하고 사람 좋은 이미지와는 달리, 현실의 저는 아주 평범합니다. (이미 알고 계셨나요?) 주말 약속을 잡아본 적이 몇 년 전 같고, 집 밖을 나가는 시간은 그나마 걸어서 5분이 걸리는 헬스장이 유일하니 아무리 새로운 소재를 위해 머리를 굴려봐도 도저히 쓸 이야기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시작할 때는 몰랐는데, 약 2천 자 분량의 에세이를 4개씩 2주에 한 번 쓴다는 것은 웬만큼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이 아니면 힘든 일이더군요. 마냥 즐거운 마음으로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쓰자!며 야심 차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글을 쓰는 것이 아닌, 밀린 학습지를 벼락치기로 풀고 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이 레터를 쓰는 중 입니다. 처음에는 딱 일주일만이라고 생각했던 게 한 달이 훌쩍 지나 어느덧 10월이 됐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우선 몇 년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닌텐도 스위치를 장만했습니다. 그것도 중고가 아닌 새 제품을.
닌텐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10년을 훌쩍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 집에는 없는 것이 많았습니다. 인터넷, TV 그리고 게임기. 당시에는 15만 원짜리 닌텐도 DS가 유행이었는데, 화면이 위아래로 달린 그 게임기 하나가 뭐라고 그걸 가진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대신 그 친구들에게는 없는, 저에게만 있는 특별한 무기가 있었습니다. 바로 만화책. 아직까지도 전설로 내려오는 웹툰 <마음의 소리> 만화책을 빌려주면, 친구들은 3일 혹은 일주일. 이런 식으로 닌텐도를 빌려주곤 했습니다. 아주 합리적이면서도 윈-윈할 수 있었던 거래였죠. 그때 접한 별의 커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레고 워즈 등 각종 게임에서 시작된 닌텐도를 향한 저의 사랑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합니다. 2D 만났던 익숙했던 캐릭터들을 3D로 만나고, 이름과 외모가 너무나도 낯선 포켓몬들을 보면서 문득 시간이 너무나도 많이 흘렀다는 것을 체감하곤 합니다. 지금의 닌텐도를 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아무래도 예전 같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 그리고 핸드폰도 바꿨습니다. 아이폰 SE 2세대에서 아이폰 14로, 무려 2년의 시간을 훌쩍 건너뛴 제품입니다. 처음에는 페이스 아이디, 홈 버튼이 없는 화면 등 적응해야 하는 일들 투성이였는데 나름대로 적응을 잘 해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이 바쁜 현대사회에서 그래도 변화의 속도를 잘 쫓아가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근황을 전하는 레터였는데 그동안 무엇을 샀는지 자랑만 나열되어 있는 카드 고지서 같은 레터가 되어 버렸네요. 당황스러우셔도 할 말이 없습니다. 아무튼,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여튼 이것저것 사다 보니, 문득 이제야 조금은 어른스러워졌다는 혼자만의 착각에 빠지고는 합니다. 점심을 먹고 사 먹는 커피값이 점점 아까워지지 않고, 가끔은 누군가에 베풀기도 하며 어른의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늘어나는 만큼, 반대로 할 수 없는 것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깨닫고는 합니다. 어른의 역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만큼, 자신의 한계를 서서히 깨닫고는 합니다. 200만 원을 버는 만큼 할 수 있는 경험도, 행복도 딱 200만 원 어치가 되어가는 건 아닌 가 답답하기도 합니다.
비단 돈 얘기가 아니더라도 나의 역량, 나의 인간관계, 나의 가치관에서 어쩔 수 없는 나라는 존재의 한계를 느끼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특히 글을 쓰는 일이 그렇습니다. 내가 잘 하는 일인지, 나의 선택이 옳았는지 혼자 고민하고 끙끙 앓다가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이곳으로 돌아오곤 합니다.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보잘것없는 저의 일상을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그래도 이 레터를 쓰고 싶다는 힘을 얻게 되는 요즘입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그럼 오늘도 잘 쉬고 가시길 바랍니다.
|
|
|
그래서 3대 몇 치시나요?
건강 상의 이유로 헬스를 시작했다거나, 몸을 만들어서 워터밤에서 상의를 탈의하고 제대로 한 번 놀겠다는 그런 구체적인 이유는 없다. 군대에서는 생각보다 시간이 남아돌았고, 남은 시간 동안 핸드폰도 없이, 혈기왕성한 20대가 시간을 축낼 수 있는 법은 운동밖에 없었다. 선택지는 두 개였다. 축구 아니면 헬스. 부모님에게는 미안하지만, 우리 집안의 DNA에 구기 종목을 위한 운동신경은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는 것 같다. 미래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꼭 운동 신경이 뛰어난 분을 만나야겠다는 망상을 하며, 그렇게 부대 내에 있는 헬스장으로 종종 향하곤 했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부대는 미군 기지 내부에 위치해, 미군의 각종 편의시설을 누릴 수 있다는 복지가 있었다. 헬스장에 들어서면 정말 공기부터 달랐다. 마블 영화에서나 보던 근육질의 캡틴 아메리카가 런닝머신을 뛰고 있고, 내 다리의 3배쯤 되어 보이는 괴물 같은 하체의 여군은 내 몸무게의 3배는 되어 보이는 무게로 데드리프트를 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무적의 미군'이 꼭 과장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 나름대로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현실을 고증한 어느 정도 근거는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은밀한 신체적 비밀을 하나 공개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새가슴이었다. 가슴이 움푹 들어가 윤곽이 보이는 가슴에, 선천적으로 빼빼 마른 탓에 다 드러나 보이는 갈비뼈는 아무리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반가움이 아닌, 동정심이 들 정도로 '불쌍한' 몸이었다. 군대를 가기 전 젊었을 때 바짝 땡겨야 한다는 마음에 점심도 대충 먹어가며 알바를 두 개씩 했을 때는 170에 50kg까지 나갔으니 말다했다. 신검을 받을 때는 저체중으로 3급을 받기도 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 몸무게에서 1~2kg만 더 빠져도 바로 재검 대상이었다.
저체중의 원인에는 요즘에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소식좌'들처럼, 짧은 입이 한몫하기도 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굶고, 귀찮아서 굶고, 입맛이 없어서 굶고. 만약 인류의 시초가 나 같은 사람이었다면, 지구는 지금쯤 아마 공룡들의 지상낙원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군대가 어떤 곳인가. 나 같은 사람도, 나 같지 않은 사람도, 온갖 인간 군상이 모두 모인 곳에서 나라는 개인의 식성은 별로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보다, 삼시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그렇게 감사한 일인 줄 군대에서 처음 깨닫기도 했다. 밥을 먹는다는 것. 밥을 먹기 위해 하루를 버틴다는 것. 사회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을 몸소 체험하며 깨달음의 무게와 함께 내 몸무게도 슬슬 살이 붙기 시작했다.
그래봤자 평균 몸무게를 간신히 밑도는 몸무게인 탓에, 헬스라는 것에 눈에 띄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남자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주제가 바로 헬스였다. 우리의 대화는 누가 더 팔굽혀 펴기를 많이 할 수 있나부터 시작해서, 점점 열기를 띠는 주제는 팔씨름 대결로 넘어가기도 하며, 어떤 프로틴이 맛있나를 지나 3대 중량을 묻는 질문으로 항상 마무리되곤 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운동을 하는 삶의 가장 큰 장점이 뭐냐 묻는다면, 그래도 나름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는 특권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누워만 있고만 싶은 날에도 꾸역꾸역 나가서 바벨을 들다 보면, 그래도 소위 말하는 '갓생'을 사는 것 같은 만족감에 빠져 하루를 보낼 수 있다. 힘겹게 벤치프레스를 하고 땀에 흠뻑 젖은 거울 속 나의 모습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는 덤이다. 무엇보다 헬스장은 재력이나, 사회적 위치와는 전혀 상관없이 순수하게 근력으로만 평가받는, 그 어디보다 평등한 세상이기도 하다. 같은 공간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이름도 직업도 전혀 모르는 그들이지만 그래도 '그들의 세계'의 일원으로서 한몫하는 것 같아 괜히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그러니 다들, 마땅한 취미가 없다면 괜히 이것저것 해보지 말고 헬스장을 다니시길. |
|
|
치즈케이크에 관한 고찰
정확히 어떻게 언제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날 파리바게뜨의 치즈케이크가 아닌 치즈케이크를 먹으며 다짐했다. 시간이 흘러 꼭 치즈케이크 한 판을 사 먹는 자립심 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겠다고. 슬프지만 이 약속은 몇 년째 유보 중이다. 우선 치즈케이크 한 판의 가격은 생각보다 쌌다. 문제는 어렸을 때의 혈기 왕성한 위장이 더 이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은퇴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분명 한 조각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서 나중에 어른이 되면 치즈케이크 한 판을 먹어치우겠다는 어렸을 적의 야망은 잊혀진 지 오래다.
그래도 빵집에 들리면 낯선 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듯이, 제일 먼저 치즈케이크를 찾게 된다. 얼마 전에는 치즈케이크에 아이스크림과 설탕을 뿌려주는 카페를 발견했다. '아이스크림과 치즈케이크의 낯선 조합이라니, 옳은 선택일까?' 하며 고슴도치처럼 따가운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봤을 때, 치즈케이크는 너무나도 무해하게, 마치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는 선악과처럼 자신의 자태를 우아하게 뽐내고 있었다. 결과는 당연히 맛있었다. 너무 달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스크림의 단맛이 치즈케이크의 느끼함과 착 달라붙어 말끔하게 씻겨 내려가는 맛이 중독적이였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케이크는 우선 꾸덕해야 한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먹고 나면 이빨 사이에 치즈가 낄 정도로 꾸덕한 치즈케이크를 좋아한다. 잘 만든 치즈케이크를 먹다 보면, 머릿속에 가라앉아 있던 여러 가지 고민들은 치즈케이크와 함께 목구멍 깊숙이 꿀꺽 사라진다. 마치 고민도, 치즈케이크 따위도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인생에서 단 맛을 찾기 어렵다면, 때로는 제값을 내고서라도 인공적인 단 맛을 찾아 먹는 것도 나름 도움이 된다. 아무리 녹록지 않아 보이는 세상 살이라지만, 그래도 각자 나름대로의 치즈케이크가 있는 삶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치즈케이크를 한입 베어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삶이라면 더더욱.
|
|
|
종교가 있으신가요?
신흥종교를 만들 생각이다. 이름도 없고, 교리도 없고, 경전도 없다. 졸린 눈을 비비며 황금 같은 주말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 할 이유도 없다. 얼마 전 일본에서 '종교 상의 이유'로 재직 중인 회사의 부당한 요구를 거절할 명분을 위해 창시되었다는 신흥 종교 이야기를 듣고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타지에서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고 계신 부모님이 들으신다면 썩 기분 좋은 생각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무언가를 믿는다는 만큼 순수한 감정이 또 있을까. 유한한, 어찌 보면 짧은 이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어딘가 기댈 구석을 찾으려는 듯 저마다의 비빌 언덕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돈, 누군가는 집, 누군가는 사랑. 아마 그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그나마 다른 사람의 시선이 따갑지 않은 아주 합리적인 '비빌 언덕'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마냥 비비기만 해서는 안 된다. 경전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리거나, 가끔은 새벽에 나와서 기도를 하기도 해야 한다. 20년 넘게 교회를 다니면서 이것이 일종의 '구원'이라는 최종 보상을 위한 서브 퀘스트들을 깨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도 1200시간 + 성경 읽기 N번 + 예배 출석 N번 시 전설 아이템 '구원'을 드려요!라는 익숙한 게임 광고들의 문구가 떠오르기도 하고. 종교라는 것이 참 그렇다. 어렸을 때는 햄버거 하나에 믿음을 약속했던 것들이, 어른이 된 지금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음에 들어서기가 참 어렵다.
불경한 생각이기는 하지만, 만약 내가 믿는 이 신이 사실은 가짜고 다른 신이 진짜라면 어떡하지라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천국과 지옥이 나뉘는 게이트 앞에서 평생 교회만 다녔던 사람들은 벙찐 표정으로 부처가 서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절을 다녔던 사람들은 위풍당당하게 천국행 문을 여는 풍경을 상상하면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만든 이 신흥 종교에서는 그럴 걱정이 없다. 사후세계에 대한 걱정은 잠시 넣어놔도 좋다. 적어도 이 종교를 믿는 동안만큼은 추운 겨울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벌벌 떨며 교회를 갈 필요도 없이, 성경을 읽을 필요도 없이 '나름대로의 착한 삶'을 살기만 하면 된다.
여기까지 적다 보니 모든 사이비 종교의 시작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고 보니 헬스장을 가기 전의 마인드와, 교회를 가기 전의 마인드가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분명 가기 전에는 정말 가기 싫지만, 막상 가면 10분 전의 과거가 무색하게 재밌게 즐기고 온다. 아마 원격 예배가 활성화되지 않는 이상, 당분간 이 종교를 창시하겠다는 생각은 계속될 것 같다.
|
|
|
오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잘 쉬다 가셨나요? 쉬려고 했다가 괜히 기운만 빠지셨다면 여기에 적어주세요.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