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쉽니다.
뉴스레터 이름으로 맞는지 순간 고민했지만, 결국 이 제목이 됐습니다. 사실, 거창한 의미는 없습니다.
이 뉴스레터를 쓰는 저도, 이 뉴스레터를 읽고 계신 여러분도 이 시간만큼은 쉬다 갔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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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외할머니가 죽었다. 그 유명한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첫 문장이 떠오르는 대목이지만, 애석하게도 이 일은 책 속의 일이 아닌 당장 우리 가족이 마주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그날은 6월 28일 오전 9시쯤이었다. 이제 막 사무실에 도착한 나는 컴퓨터를 켜고 있던 참이었다. 누군가의 사망 소식을 텍스트로 받아본다는 건 당연하겠지만, 생각보다 썩 유쾌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다. 무미건조한 검은색 활자들이 우리 할머니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소식을 전하는 순간에도 외할머니의 죽음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나 창원에서 살았다. 경상도에 얼마나 오래 사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엄마 말로는 외할머니의 말씨가 강원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인 출처 불명의 사투리라고 했다. 서울 촌놈인 내가 그런 차이를 구분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그래도 경상도 토박이인 친할머니, 일명 '시골 할머니'보다는 덜한 사투리 덕분에 외할머니와는 한결 소통하기 편했다. 하지만 가끔 외할머니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는 때가 종종 있었다.
가령 외할머니는 아이스크림을 '하드'라고 부르곤 했다. 언젠가 외할머니가 나를 보며 '카드(하드) 사러 갈래?'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이제 막 9살도 안 된 어린 손자의 귀에는 그 '하드'라는 단어 '카드'로 들렸고, 나는 외할머니가 당시 유행하는 유희왕 카드를 아실 정도로 힙하신 분이라고 생각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고 나서 한껏 기대감에 차 외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따라간 곳은 아파트 옆 구멍가게였다. 외할머니는 해맑은 얼굴로 멍해진 내게 메로나를 건네주셨다. 그날부터 외할머니는 내게 메로나가 되었다.
서울에 있을 때면 집에 있는 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나는 할머니 집에 가면 유독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많아졌다. 집 앞에 있던 장미 공원, 아파트 놀이터의 흙바닥 등. 우리의 발걸음이 닿는 모든 곳이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고, 우리가 만지는 모든 것들이 우리의 장난감이 되었다. 부러진 나뭇가지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멋진 칼이 되었고, 누군가 버리고 간 과일을 싸는 플라스틱 모형은 근사한 모자가 되었다.
시간이 흘러 유일한 손자였던 내가 장손이 되고, 사촌 동생들이 생겨날 때쯤. 온 가족이 필리핀으로 떠나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들어오게 됐던쯤. 까까머리로 처음 나온 신병 휴가에서 외할머니를 오랜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외할머니는 의자가 아닌 휠체어에 작은 몸뚱아리를 얹고 계셨다. 외할머니와 루게릭이라는 지독한 병의 악연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그 질긴 악연은 그제야 끝이 났다.
6월 28일, 장례식장 달력에는 빨간색 글씨로 철도의 날이라고 써져 있던 날. 문득 어디선가 사람이 죽으면 저 머나먼 우주의 별이 된다는 말이 머릿 속에 떠올랐다. 장례식장을 찾아온 교회 목사님의 위로보다, 주변인들의 안부를 전하는 메시지보다 우습게도 그 이야기 하나가 퍽 위안이 됐다. 여담이지만 외할머니 앞에 붙는 외(外)라는 수식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할머니가 우리 사람이 아닌, 타인처럼 구는 것만 같아서. 어느 집안에도 속하지 못하는 외지인처럼 대하는 것만 같아서. 외할머니와 나 사이에 엮인 그 무수히 많은 순간들이 고작 그 단어 하나로 마치 아무것도 아닌 한 때의 순간처럼 취급되는 것 같아서 그 단어가 참 싫었다. 나에게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인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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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라는 아티스트
이미 눈치챈 눈치 빠른 구독자 분들도 계시겠지만, 나는 힙합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빈지노라는 아티스트를 가장 좋아한다. 굳이 래퍼라는 수식어 대신 아티스트라고 그를 칭하는 이유는, 이미 빈지노는 이 씬에서 하나의 굵직한 거물이자 이 문화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일종의 리스펙인 셈이다. 빈지노와의 첫 만남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아, 당연히 빈지노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다.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 뵙기를 소망합니다.) 살면서 우리에게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거나, 터닝 포인트를 경험했다고 하면 대개 이 시기일 것이다. 나도 역시 그랬다. 세상에 온갖 불만이 가득하던 질풍노도의 시기, 나 역시 반 친구가 쓰고 다니던 흰색 소니 헤드폰을 따라 사서 등굣길마다 X폼을 잡으며 끼고 다녔다.
그 당시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다른 장르가 끼어들 틈 따위는 없는 순도 100%의 힙합이었다. 다이나믹 듀오, 에픽하이의 전집을 공기계에 담아서 들고 다니던 나에게 다른 세계의 음악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니 그 때나 지금이나 음악 취향은 사실 지금과 별 차이가 없어 보이긴 한다. 아무튼 다이나믹 듀오로 입문한 힙합의 세계는 나를 방대한 아티스트들에게로 인도했다. 빈지노 역시 그때 만난 사람 중 하나다.
빈지노의 음악은 뭐랄까, 정의 내리기 참 어렵다. 흔히 재즈 기반 힙합이라고 많이 알려져 있긴 해도, 일리네어 레코즈 당시의 음악만 보더라도 한 장르에만 치우쳐진 래퍼는 절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빈지노의 장르는 그냥 빈지노다. 트랙 위에서 빈지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한다. 여자 이야기, 돈 이야기, 인생 이야기, 과거사 등. 희한하게도 다른 누군가가 쓰면 그저 그런 저렴하고 지저분한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가사들이, 빈지노가 쓰면 설득력이 담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되어 버린다. 빈지노가 인터뷰에서 말하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기가 막힌 벌스가 되고, 그가 하는 패션은 항상 트렌드가 된다. 조금만 오바하자면, 그야말로 한국의 칸예다. 아, 정정하자면 2023 칸예가 아닌 2010 전성기 시절의 칸예다.
뭐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빈지노의 음악이 사랑받는 이유는 예술성 간지가 아닐까 싶다. 스윙스 형님이 말씀하셨듯, 힙합에서 간지라는 부분은 래퍼가 되기 위한 충분조건에 가깝다. 가깝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당연히 간지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간지라는 건 뭐냐, 외모가 될 수도 있겠지만 무대에서 사람들을 휘어잡고 나의 사람들로 만들 수 있는 일종의 카리스마라고 생각한다. 쇼미3의 바비가 그런 것처럼 간지라는 건 참 불공평하게도 어쩔 수 없이 타고나야만 한다. 그래서 유독 간지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가 간지의 정점인 빈지노에게 더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랑은 결핍에서부터 파생되니까 말이다. 언젠가 나의 사랑이 빈지노에게 닿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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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에 관한 짧지만 굵은 고찰
혹시 남자의 음식 3가지를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 제육, 국밥 그리고 돈가스. 길거리에 지나가는 아무 남자를 붙잡고 물어봐도 아마 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음식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적당한 가격과 적당한 포만감을 쥐어주는, 흔히 말해 가성비가 좋은 음식. 하지만 요즘 들어 다른 음식들은 몰라도 돈가스는 가성비라는 타이틀을 반납할 때가 아닌가 싶다. 무슨 말이냐면 돈가스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다. 이제 만원 정도는 우습게 웃도는 요즘 돈가스들의 만행을 보며, 돈가스에 관한 짧지만 굵은 고찰을 전하고자 한다.
우선 돈가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일식과 양식. 일식 돈가스의 생명은 '튀김옷과 어우러지는 고기 본연의 맛'이다. 양식 돈가스, 흔히 경양식 돈가스라고 부르는 돈가스들의 생명은 소스다. 만약 우연히 발견한 돈가스 집에서 소스 없는 돈가스를 발견했다면 그 집은 경양식 돈가스라고 쓰여진 간판을 과감하게 떼버려야 한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눈길을 주지 않고 그 집에서 나오길 바란다. 그만큼 경양식 돈가스에서 소스는 돈가스 그 자체라도 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경양식 돈가스에 흔히 쓰이는 소스는 '우스터 소스'라고 부르는 녀석들인데, 이름이 낯설다고 해서 경계심을 가질 필요는 없다. 새끼손가락에 살짝 찍어 먹어 보면, '아, 이 맛!' 하면서 경계심이 허물어질 테니. 그만큼 대중적이고, 가장 우리의 혀에 익숙한 맛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시판용 우스터소스보다, 조금이나마 주방장 님의 과감한 커스터마이징이 가미된 소스를 선호한다. 이를테면 망원동의 줄 서서 먹는 유명한 모 돈가스 집처럼.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조만간 추가가 되어야 할 정도로 이 집이 인기 있는 이유는 참 미스터리하다. 심지어 간판에는 돈가스가 아닌 '우동'이 큼지막하게 써져 있다.
하지만 일단 먹어보면 안다. 지극히 내가 아는 그 맛, 그 맛이 충실히 구현된 이 집의 돈가스는 가까이할 이유는 없지만, 그렇다고 또 멀리할 이유도 없다. 언제 가서 먹더라도 초심을 잃지 않고 우리를 두 팔 벌려 맞이하는 이 맛의 핵심은 소스다. 빛깔만 봐서는 시판용 우스터 소스를 그대로 쓴 것 같지만, 묘하게 감칠맛이 나는 이 소스의 비밀이 무엇인지는 단골 2년 차인 나도 아직은 잘 모르겠다. 혹시나 아는 분이 있다면 기꺼이 공유해 주시길. 우연히도 이곳 역시 망원동에 있다. 이 쯤 되면 망원동이 돈가스의 메카인가 싶기도 하겠지만... (사실 어쩔 수 없다. 에디터의 행동반경이 평균 이하로 좁은 탓이다.) 망원동의 흔한 맛집들이 으레 그렇지만, 이곳 역시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다음은 일식 돈가스다. 최근 들어 '돈가스'하면 양식 돈가스보다 오히려 이 녀석들을 먼저 떠올릴 정도로 그만큼 요즘 인지도가 절정에 오른 타입의 돈가스다. 일식 돈가스의 특징은 바삭한 튀김옷, 고기 본연의 맛에 집중한 간결함이다. 소스에 찍어 먹어도 맛있지만, 개인적으로 고기의 기름진 맛을 만끽하기 위해 간단하게 소금 또는 와사비에 찍어 먹는 편을 추천한다. 망원동에 있는 해키라는 돈가스 집은 특이하게도 트러플 오일이 함께 제공되는데, 너무 기름지지 않을까는 기우가 무색하게 한 입 먹는 순간 입 안에서 퍼지는 풍미가 압도적이다.
언뜻 보기엔 트러플 오일의 공이 크다고 느껴지겠지만, 이 집의 돈가스는 척 보기에도 뭔가 다르다. 가게 안에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숙성되고 있는 고기들을 보고 있자면 이 집이 얼마나 돈가스에 진심인지 알 수 있다. 그 맛을 비유하자면 '감동이 있는 맛'이다.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는 고기라는 걸, 돼지고기에서도 이런 깊은 맛이 날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해 준 곳이다.
혹시나 시간이 된다면 이 두 군데를 찾아가 보길 바란다. 회사를 옮기면서 이제 이 두 돈가스집을 만나보려면 큰 결단이 필요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되는 날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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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써봤습니다. 잘 쉬다 가셨나요? 쉬려고 했다가 괜히 기운만 빠지셨다면 여기에 적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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